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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 8편 : 르네상스 미술 (2)
| 선원근법

빨간색 직선처럼, 선들이 모여서 수렴되는 점을 '소실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근법 보다는 '선원근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해당 기법을 더 잘 의미한다. 선원근법으로 그린 작품들은 구조가 선적이며, 선이 실제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구조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것을 사용한다. 피사체를 그릴 때에는 원하는 위치의 칸, 즉 선 위에다가 그리며, 전반적으로 모든 것들이 다 정해져 있고, 철저하게 선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선원근법 말고도 또 다른 원근법이 존재한다. 최후의 만찬 작품을 보면 근경, 중경, 원경 이렇게 거리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멀고 가까운 것이 원근법을 통해서 2차원이지만, 3차원처럼 표현되고 있다. 즉 선으로 구조화된 것인데, 다 그린 형태에 공간감을 주기 위해 색을 칠하게 된다. 식탁처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은 색을 진하게 칠하는 반면, 세 개의 창문처럼 멀리 있는 곳에 위치한 것은 색을 조금 연하게 표현하여 거리감을 공간감을 표현했다. 특히 원경에 있는 것은 명도와 채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를 '대기원근법'이라고 표현한다.
선원근법의 원리를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 사람들은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으로 있는 그대로 옮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볼 때에 시점의 차이가 계속 발생하여 오차가 늘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의 눈은 두 개이고, 위치가 다르기에 오차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시점의 변화를 없애려고 했다. 이를 위해 생겨난 기준이 '단안법'이다. 단안법은 시점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정된 것을 찾기 위해서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어있다고 가정한 것을 전제로 두고 있다. 단안법은 사살적인 표현은 맞지만, 사실은 아니다. 즉, 쉽게 말해 선원근법은 이러한 전제 하에,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직선을 순차적으로 표현하여 형태가 2차원에 3차원의 거리감과 공간감을 느껴지게 하는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키워드 : 단안법(시점의 변화 X), 소실점, 직선, 순차적, 형태, 거리감, 공간감, 2차원에 3차원의)
| 미술학

해당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이다. 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인체를 실제로 해부했어야 했는데, 이는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 바로, 단순히 미술에 불과한 것이 아닌, 미술학으로의 발전을 담고 있다. 드디어 미술이 의학, 과학 등 공학적으로 연결되어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전보다는 더욱 형태를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에서 미술학까지 발전되면서, 결국에는 천문학까지 가게 되었다. 이를 통해 느레상스 화가들이 어떤 생각과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미술학으로 발전되는 과정 속에서 선원근법과 같은 기법들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 자화상, 정밀 묘사

이러한 선원근법으로 만들어진 작품 중 대표적으로는 '아테네 학당'이 있다. 소실점 주변에는 항상 작품의 중심 대상이 오게 되며, 소실점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가 대칭을 이루게 된다. 이를 통해 작품의 무게 중심을 바로 잡아주게 된다. 해당 작품에서는 순수 이론과 자연 철학이 좌우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실제로는 순수이론 철학자들이 자연철학자들보다 적고,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균형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방지하기 위해서 사람이나 사물을 더욱 넣어서 균형을 이루고자 했고, 이러한 특징은 선원근법을 잘 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로 작품의 우측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화가 본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개념을 적용해보았을 때, 작품에는 도상을 기반으로 그려져 있다. 도상은 신화 속 주인공이나, 성경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나 상징들이 표현되는데, 해당 작품에서는 예외적인 부분이 발견되었다. 특징들을 제공해주고 이를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사람은 읽을 수가 없다. 포즈도 상징도 없기에 말이다.
즉, 이 작품이 그려진 르네상스 때부터는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자의식이 높아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미술이라는 분야가 미술에서 미술학으로 발전되어 가면서 자신들은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넘어, 미술학 즉 과학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부심이 생기게 되었다.

해당 작품도 원근법을 잘 담아냈다. 2차원이지만, 3차원의 느낌을 낸다. 이정도의 수준으로 원근법이 잘 발전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작품의 우측에서 창을 그리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정밀하게 표현한 것을 '정밀 묘사'라고 한다. 세밀하게 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표현하였고, 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동일한 작가가 몇 년 후에 또 다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정밀함의 정도는 전보다 더 좋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정교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화가의 자화상의 느낌이 달라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보다 더 잘생겨지게 표현되었으며, 예수님을 도상하려고 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드러난다. 즉, 권위와 이미지를 첨부한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동식물도감에 실려 있는 작품처럼, 털을 심듯이 정밀하게 그려진 토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주 세밀하게 현미경을 내다 보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털을 하나까지 빠지지 않고 다 그리겠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생생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며, 이는 육안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은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는 조각을 살펴보자. 해당 작품은 골리앗의 잘려진 몸 위에 서 있는 다윗을 표현했다. 전형적인 콘트라포스트를 담아낸 작품이며, 이는 고대 그리스 고전기 문명을 닮고 싶어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또한, 해당 작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추구미가 있었다. 골리앗의 잘려진 몸 위에 서 있다는 점을 통해 끔찍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예쁜 모습을 위해 미간에 인상을 쓰지 말자는 점과 같이 표현하고자 했었다. 즉,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미켄란젤로가 표현한 다윗의 모습을 보더라도, 여전히 콘트라포스트가 담아졌다. 인간적이지는 않지만, 멋있어 보여야 하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실제 사람들이 겪는 감정들은 배제 되어 있다. 그래서 정적이고, 이상향을 만들어놓은 것을 표현했다. 이는 절대적으로 현실이 아니며, 현실 '같아' 보이는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미술은 생생하지 않고, 정밀하게 그려져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전과는 다르게 아기의 모습이 실제 아기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처럼 보여지지는 않는다. 신체 비례는 비슷하지만, 현실의 아이같지는 않다는 점 특징이다.

그러다 우측처럼, 17세기가 되면 르네상스의 추구미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추구미가 달라지면서, 그에 따라 기법도 세계관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어떠한 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바로크 미술을 통해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