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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 15편 : 입체주의(큐비즘)

| 입체주의 (큐비즘)

두 작품은 동일한 시대의 작가이며, 둘다 여인을 그렸지만 둘이 관심이 상반되어 있다. 마티스는 색에 집중했고, 피카소는 형태에 집중했다. 반면, 두 작가 모두 공통점도 존재한다. 바로 큰 대전제는 유사하며, 사실적인 것 즉 원근범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둘다 1910년대 작품이며, 피카소든 마티스든 여인을 그렸다는 것은 식별이 된다. 근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연인지, 식별인디 등 식별이 안 되는 그림이라면, 추상 미술이 등장하게 된다.

마티스는 '색채'를 중점적으로 드러냈던 작가였다. 만약 원근법을 제대로 사용했더라면, 외부와 내부가 거리감 있게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마티스는 해당 작품을 그릴 때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색'을 사용하여 구분하려고 했다. 보색인 초록색과 붉은 색을 사용하고, 이 사이를 노란색으로 구분하며 모든 것을 색으로 드러냈다.

물론, 색으로 구분하다보니, 벽지와 탁자에 있는 것이 공간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보이는 특징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원근법의 핵심인 공간감과 거리감이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에서도 색이 강조된다. 붉은 색과 푸른색처럼 작품의 색을 통해 '감정'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감정은 motion이기에, 움직임을 드러낸다. 즉, 현대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세계를 그리고 싶어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 중 가장 큰 핵심이 바로 '움직임'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피카소의 특징은 '다시점'이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특징을 살펴보자.

'Picasso Braque'라는 영화에서는 20세기 현대 미술과 피카소 미술을 연관지어서 설명한다. 해당 영화에서는 현대 초기 무용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serpentine dance'라는 춤의 속성에 집중해보자. 이 춤은 굉장히 면적이 넓은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데, 이를 관객이 봤을 대 시각적인 효과가 더 강조되게 된다. 또한, 조명을 어떻게 주냐에 따라서 컬러풀이 더 강조되기도 한다.

당 시대에는 서양 현대 미술이 시작될 때, 현대 무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볼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움직이는 것에 매료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피카소도 말이다.

피카소가 그린 작품을 보자. 해당 작품에는 탁자에 기타, 병, 신문지 등이 발견된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피카소는 현대인의 일상을 더 기법적으로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린 것도 있지만, 신문 같은 미디어를 오려 붙인 것도 발견된다. 피카소가 1910년도부터 사용했던 '오려 그리기' 기법을 '콜라주 기법'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콜라쥬(collage)는 '오려 붙이기'라는 의미를 가지며, 이 시기에 많이 사용한 것이 바로 '신문 잡지'였다. 콜라주의 묘미는 신문을 오려 붙일 때 보여지게 되는데, 사실 오려 붙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인데, 그렇다면 이 부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신문에는 'RFIGARO'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R'를 제외하여 'FIGARO'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의미를 재창조하는 것이 콜라주 기법의 특징이다.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다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워보이더라도 쉽지 않다. 어디서 잘라낼 것인가와 같은 본인만의 명확한 기준이나 생각이 없으면, 어디서 오려내야 할지에 대해 정하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

기존의 'URJNAL'라는 단어에서 'URNAL'로 콜라주하게 되면서 결국엔 의미가 '소변기'라는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 즉, 의미를 바꾸는 것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하게 된다. 즉, 콜라쥬를 통해 피카소가 보여준 재창조기법을 우린 주목해야 한다.

콜라쥬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보자. 제작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Making, Taking 이 두 가지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making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즉, 제로투원을 의미한다. 반면, taking은 기존에 있는 것 즉, 유에서 유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콜라쥬는 taking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을까? 당시에는 사진기가 생겨나게 되면서 가질 수 있게 된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워지게 되었고,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나아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takign도 새로운 창작 방식으로 생겨나게 되며, 선택의 미학을 바라보게 되었다.

| 기말고사 2번

2. 피카소 작품의 특징을 2개로 요약 설명하시오 (작품 사례 2개)

1) 다시점 : 일시적 선원근법에서 탈피 = 다시점 = 움직임

2) 코랄쥬 : 오려 붙이기, 제작(making)에서 선택(taking)으로 창작 방식의 변화 = 기계적 = 편집 ㅂ미학

- 매스 미디어(신문, 잡지, 영화) = 양적 팽창

고전주의

현대미술

세계관

고정적 세계관

유동적 세계관

의식

무의식, 불확실성

대표 기법

원근법

탈원근법 = 다시점 = 움직임콜라쥬

절대적 공간, 시간

상대적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을 중심으로 한 고정적 세계관을 완성시켰던 시기였다. 이 사상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기와 르네상스에 두고 있으며, 인간이 '이성의 빛'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인간의 이성은 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었고, 세게는 '불변하는 진리'로 굿어되어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사고는 회화에서도 '선원근법'으로 구현되었다. 선원근법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현실을 일시적으로 '고정된 시점'에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즉, 세계를 하나의 절대적 시점에서 질서 있게 바라보는 고정석 세계관의 시각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더 이상 이성만으로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의식의 영역 밖, 즉 무의식의 존재가 인정되면서, 세계는 통제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대인은 "불확실성만이 유일한 확실성"이라는 역설적인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날 AI 역시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에측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는 존재로,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적 감각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이성의 빛'이 극도로 발달했지만, 동시에 '어둠(불확실성'의 영역이 사라지지 않는 신암흑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예술의 형식과 기법에도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피카소는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시점으로 세계를 재현하지 않았다. 그는 일시적인 선원근법을 해체하고, 여러 방향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다시점을 통해 유동적이고 상대적인 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움직이는 시선과 불완전한 인식을 담은 '탈원근법적 회화'로, 절대적 진리 대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또한, 피카소는 창작 방식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 예술이 '만드는 것(making)'이었다면, 그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선택하고(taking) 재조합'하는 콜라주 기법을 도입했다. 콜라주는 프랑스어로 '오려 붙이기' 라는 뜻으로, 신문/잡지/영화/라디오 등 2차 산업혁명기의 매스 미디어에서 얻은 이미지를 새로운 맥락으로 편집함으로써, '기계적 창작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미디어는 대중에게 대량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였고, 피카소는 그 속의 시각적 파편들을 예술의 재료로 끌어와 현실의 편집을 시각화했다.

결국, 피카소의 다시점과 콜라주는 단순한 회화기법이 아닌, '절대적이고 고정된 세계관'에서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세계관'으로 전환을 상징하는 예술적 언어였다.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완벽한 재현을 추구하지 않으며, 움직임/편집/불확실성/유동성을 통해 20세기 현대 미술의 새로운 인식 구조를 제시했다.

GPT의 답변 피카소의 작품은 고전적 세계관에서 현대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반영한다. 첫째, 그는 일시적 선원근법에서 벗어나 ‘다시점(Multiple Perspective)’을 구현하였다. 이는 고정된 시점을 해체하고, 움직이는 인간의 시선을 따라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유동성, 불확실성을 표현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비뇽의 처녀들》(1907)과 《만돌린을 든 소녀》(1910)은 절대적 원근법에서 탈피한 탈원근적 회화를 보여준다. 둘째, 피카소는 ‘콜라주(Collage)’ 기법을 통해 제작(making)에서 선택(taking)으로 창작 방식을 전환하였다. 이는 신문·잡지·영화 등 2차 산업혁명기의 매스 미디어를 예술 속으로 끌어들이며, 기계적이고 편집적 미학(editing aesthetics) 을 실현한 것이다. 《의자자리 정물》(1912)과 《병과 신문이 있는 정물》(1913)은 이러한 현실의 재편집을 통한 새로운 미학을 대표한다. 결국 피카소의 ‘다시점’과 ‘콜라주’는 이성 중심의 고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무의식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유동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며, 20세기 현대미술의 출발점을 제시한 혁신적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