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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 4편 : 그리스 미술 (2)

| 서론

그리스 미술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7세기부터 5세기까지 위대한 각성이 일어났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5세기였다. 물론, 기원전 6세기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5세기부터 자연스러운 사실적인 묘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 사람들은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의지가 굉장히 높았다. 어떻게 하면 실제에 있는 것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좌우의 비대칭을 의미하는 '콘트라포스트'과 길이가 긴 물건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짧은 모습을 그린 '단축법' 이렇게 두 가지가 있었다. 우리는 5세기 이후를 '고전기'라고 부른다.

| 원반 던지는 사람

'자연주의'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보려면, 현실과 유사성의 정도가 굉장히 높아야 한다. 즉, 현실에 있는 것과 똑같아야 한다. 위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보기에는 자연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미술가는 관객의 눈을 다 속일 수 있는 존재이며, 이 작품을 정면에서 보면 반전이 있다. 물론, 이집트와 비교해서 보면 자연주의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해당 장면은 원반을 '던지고, 가속이 붙는 장면'이다. 그러나, 표정을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또한, 실제 동작은 속도가 상당히 빨랐을텐데, 어떻게 정지 동작을 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하체가 상체에 비해서 너무 꺾여져 있다. 하체는 측면으로, 상체는 정면으로 최대한 넓은 어깨와 가슴 전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역동적인 느낌을 주며, 현실에서 실제로 이 동작을 취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이 작품을 자연주의로 보기에는 애매해진다.

또한, 해당 작품은 그리스 고전기 작품인데, 이집트의 정면성의 법칙이 혼용되어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따라서, 이분법적으로 그리스와 이집트 미술을 설명하면 안 된다.

| 중간고사 1번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도판 55)을 통해 '이집트 미술'과 '그리스 미술'의 관계를 설명하시오.

해당 작품은 이집트 미술과 그리스 미술의 특징이 섞여 있다. 이집트 미술의 경우, 보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래서 '정면성의 법칙'을 갖고 정규화된 방식에 맞춰서 작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욱 정면성의 법칙이 강하게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그리스 미술의 경우, 보이는 것에 집중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더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두 가지 기법이 있다. 하나는 '콘트라 포스트' 기법이다. 이 방법은 좌우가 비대칭을 이루며, 이를 통해 역동적인 모습을 건네준다. 또 다른 기법으로는 '단축법'이 있다. 이는 길이가 긴 것을 짧게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발을 정면에서 보면 짧게 보이는 것을 살려서 그린 것처럼 말이다.

아동의 발달 단계를 도식적 단계, 초기 생명주의 단계, 자연주의 단계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이집트 미술은 생명감이 느껴지기 보다는 도식적인 느낌에 가깝고, 그리스 미술은 살아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자연주의 단계 느낌에 가깝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각 나라와 시대의 미술을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모든 지역은 필터와 같이 각기만의 도식화가 있다. 그 문명과 지역이 추구하는 세계관과 미감이 합쳐져서 자신만의 도식화를 만든 것이다. 이집트는 현실과 닮지 않은 도식화를 갖고 있는 것이며, 그리스는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보이게 하는 도식화였다. 즉,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모든 시대 사람들이 자신만의 도식화 필터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필터를 통해서 그 시대의 특징과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게 된다.

도판 13, 14를 살펴 보면 말이 달리는 모습을 하나는 그림, 하나는 사진으로 표현되어 있다. 둘다, 달리고 있는 말에 대해서 포착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림과 사진이 각각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도판 13은 1821년도에 그려진 작품으로써,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그렇다보니, 달리고 있는 말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그릴 수는 없었다. 즉,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상상하는대로 그림을 그렸고, 앞서 다룬 '원반 던지는 사람' 작품도 동일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림은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띄어져 있지만, 실제 사진에서는 이와 같은 사진을 볼 수 없다. 즉, 기술 혁신 이전과 이후는 시각 체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보면 수평으로 뻗어져 있고, 이를 통해 안전감과 위엄의 느낌을 준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선이 곧게 뻗어져 있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 건축 공학적으로는 직선이 아니었다. 가운데 그림처럼, 실선을 보면 중앙에 갈수록 볼록한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해당 기둥이 직선으로 보인다. 즉, 우리의 눈은 실제보다 좁게 보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제 직선으로 만들면, 외소해 보이는 안전감이 줄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를 고려해서 실제로는 볼록하게 만든 것이었다. 더 나아가 바닥에 있는 수평도 동일했고, 끝에서 중앙으로 갈수록 살짝 볼록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 조형 사상이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중요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가 중요하기 보다는, 실제로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즉, 신빙성이 있어 보이면 됐다.

아테네 학당

해당 작품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의 모든 것을 부활시켰고, 따라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다 그렸다. 이 작품의 재밌는 사실은 왼쪽 경향과 오른쪽 경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우측 사진처럼, 왼쪽에는 플라톤, 오른쪽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위치해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 현상계가 아님을 강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철학과 땅을 강조했다.

플라톤의 경우 그리스 미술에 대한 언급된 말이 많았다. 플라톤은 해당 작품과 같이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믈 많이 했다. 즉, 플라톤은 이집트 미술을 더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