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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 3편 : 그리스 미술 (1)
| 서론

이 작품은 인체를 실제 사람의 모델로 삼아서, 그 사람이 포즈를 취하면 그리는 방식으로 그리는 이집트 사람들의 미술을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모델을 그린 방법이다. 정면성의 법칙에 따라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이것이 서양식 미술 교육의 기본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모델을 두고 그림을 그렸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보는 것을 그렸다기 보다는, 아는 것을 그렸다. 아는 것을 그린 것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들도 관찰했다. 즉, 아는 것과 보는 것이 서로 섞여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이집트 시대의 그림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림이 살아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즉, 무덤 안에서 인체의 특징이 다 담겨서 실제로 살아 있도록 하고자 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이 이집트 미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볼 수 없는 무덤 속에 넣어 거기서 마술의 힘으로 왕의 영혼이 그 형상 안에, 그리고 그 형상을 통해 영원히 살아가게 도와주도록 했다. 실제로 가리키는 이집트 말 중의 하나는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자 (He-who-keeps-alive)’였다.
이 기하학적인 규칙성(정면성의 법칙)과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의 결합(실제로 관찰은 함)은 모든 이집트 미술의 특징을 형성한다. 우리는 무덤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와 회화에서 이런 점을 제일 잘 연구할 수 있다. 사실 ‘장식’이라는 단어는 죽은 사람의 영혼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게 만들어진 미술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이런 작품은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옛날, 아주 무시무시하고 까마득한 옛날에는 세력자가 죽으면, 그의 하인과 노예들을 그의 무덤에 함께 매장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는 그들을 희생시켜서 그의 신불에 걸맞는 수행원을 대동하고 저승에 가도록 되어 있었다.
즉, 무덤에 미술 작품을 같이 넣었는데, 이는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세력자가 죽으면, 하인과 노예들을 그의 무덤에 함께 매장하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비인간적이기에, 부장풍습이 사라진 뒤에는 작품을 같이 묻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는 보는 것보단 아는 것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고, 섞여 있으며 아는 것의 비중이 더 높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분법적으로 잠시 보았을 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 미술의 경우에는 이집트 미술보다는 보는 것에 조금 더 가깝다.
| 3장 : 위대한 각성 -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 그리스
이집트 미술은 3천년 동안 변화가 미약했지만, 그리스는 굉장히 본질적인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다. 두괄식으로 그리스 미술의 핵심을 이야기하면, 기원전 5세기에 근본적인 변화(위대한 각성)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기원전 5세기가 현대 인류의 미감, 미적인 감각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1) 위대한 각선 ‘만찢남’의 기원 - 그리스 미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만찢남, 조각미남'이라는 단어는 보통 "와 예술이다"라는 말이 따라서 붙게 된다. 이 말은 현실과 그림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말이다. 미술가가 정한 것도 아닌, 일반인인 우리가 정한 말이었다. 이 말의 포인트는 현실이 '조각' 같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입견이 있다. 바로 그림이 현실을 닮게 그리는 것이 '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은 현실의 모방이라고 보지만, '만찐남, 조각미남'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경우를 가리킨다. 즉, 현실을 보고 그림을 떠오르는 것이며, 현실이 그림을 닮았음을 의미한다. 그림이 현실을 따라 그려질 수는 있지만, 우리는 세상과 현실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이어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필터를 쓴 채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혼종을 잘 만든 사람이 바로 '그리스 사람'이었다.
2) 아테나 여신의 상징성

이집트와 그리스를 지리적인 특성으로 대조해보면, 이집트는 사막이라 폐쇄적이고 변화가 적었다. 그에 비해 그리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고, 지형이 이집트랑 비교해서 보면 개방적이었다. 개방적이었다는 말은 즉, 타 영역과의 침범이 빈번하게 일어나서, 전쟁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그리스의 문명의 속성을 짚어가면서 그리스 미술의 특징을 분석해보자. 이집트를 생각하면 '피라미드, 무덤'이 생각나고, 그리스를 생각하면 '신전'이 생각난다. 물론 그리스도 사후 세계를 생각하는 부분도 존재했지만, 이집트보다는 덜 했으며, 현재를 더 즐기고 아름다움으로 추구했다.

좌측 사진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를 생각하면 '백색 신전'이 생각난다. 비교해서 우측 그림과 같이 당시 생활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담긴 의미를 볼 필요성이 있다. 이때의 신전은 신상을 모시는 곳이었고, 그렇다보니 제사를 드릴 때에는 제사장 급의 사람들만 갈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수용할 수 없는 건축법이 존재했었다. 그래서 신전을 지금의 교회 건축과는 기능이 전혀 다르고, 규모가 큰 '거대한 조각'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전쟁' 그리고 '신전'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전쟁의 여신인 '아테네 여신'이 있다. 전쟁을 많이 일으키자는 의미가 아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을 잘 다스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테네 여신의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아테네 여신의 모습은 사진과 같이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이렇게 색상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는 아테네 여신의 상징성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파올로 파이밍고의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아테나'라는 작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제우스'가 '아테네'보다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신이 바로 '아테네'였기에 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 허벅지에서 태어난 신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신이었고, 바로 술의 신인 디오니시스였다. 또한, 술의 신은 다른 별명으로 예술의 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아테네 여신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조금 상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네 여신이 등장하는 두 가지 작품을 더 살펴보자.

왼쪽에 상체는 인간, 하체는 말의 모습으로 된 대상이 바로 '켄타우로스'이다. 이는 야만성을 의미하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혜의 신인 아테나가 켄타우로스를 통제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 작품에서는 아테나 여신이 창과 방패를 들고 왼쪽에서 오고 있다. 아테네 여신은 지혜를 뜻하면서도 '미덕'을 상징한다. 아테네 여신 즉, 미덕이 오면서 오른쪽에서는 악덕이 물러가는 구조로 작품이 표현되고 있다. 우측에서는 또 다른 여신, 즉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등장한다. 심지어 아프로디테는 켄타우로스 위에 그려져 있다. 미의 여신인데 악덕으로 표현된 이유는 바로 아프로디테가 상징하는 미의 유형은 육체적이고 외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미를 악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내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했는지 생각해보았을 때, 답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외적인 아름다움도 엄청 추구했었다. 내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부분을 통해 오감을 다 느낄 수 있기에, 작가는 아름답게 이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 로마의 느낌이다.
3) 도기화, 그리스의 그림 방식

자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회화에 그려진 그리스 로마의 미술 작품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리스 시대 당시에는 인류 역사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평평한 면, 즉 캠버스가 없었을 때였다. 그렇다보니, 2차원에 그리는 것은 대부분 벽에 그려왔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는 '도기화'라고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는 2차원에 그려진 그림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사진에 있는 그릇은 바로 그리스 시대 당시의 그릇이다. 조금 더 직역해서 보면, 아테네 전지역 대상으로 열리는, 지금으로 비유하면 '전국 체전'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주는 '암포라'라는 그릇이었다. 현재는 이 그릇이 상징성만 있지만, 당시에는 포도주나 오일을 담아주는 포상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 그림은 기원전 6세기경이 그려졌다.

이번에는 '어떻게 그렸냐'를 위주로 한 번 바라보자. 이 작품에는 재밌는 특징이 있었다. 당시의 경우에는 문자가 이제 발명이 되었고, 사인도 메모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 도자기에는 '폴리아스의 아들, 에우티메데스가 이를 그렸다. 에우프로니오스는 이렇게 그리지 못한다'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
폴리아스의 아들인 에우티미데스가 이 작품을 그렸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를 살펴보면, 에우티메데스가 가진 직업은 가문대로 이어지는 직업이었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며, 다른 집안과도 관계가 있었다. 즉 계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바로 '에우프로니오스는 이렇게 그리지 못한다'라고 적힌 점이다. 왜 '에우프로니오스'가 등장했을까? 에우프로니오스는 당시 동종 업계의 사람이었고, 엄청난 경쟁심이 있었다.

조금 더 그림을 살펴보면, 동작 묘사가 상당히 역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포즈는 '에우프로니오스는 못하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술도 한 잔 하고, 춤도 추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는 학술 행사의 원형인 '심포 시온'의 참석자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흥에 겨워하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내가 이제 이렇게 역동적으로 그릴 수 있어"라는 점이 그림의 메모로 남겨져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이 작품에서는 포도를 따고, 으깨고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중에서도 술의 신인 디오니시스는 상단의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아래 큰 사이즈를 가진 즉,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사티로스'라는 존재였고, 그들은 디오니시스와 함께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조금 더 인체와 비교해서 살펴보면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정면성의 법칙을 따르던 이집트 미술과는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먼저, 정면성의 법칙에서 정면을 표현하던 상체가 측면으로 표현됐다. 이는 사티로스의 일하는 모습을 측면에서 보고 그린 것이며, 정면보다 측면이 훨씬 더 인체묘사가 자연스러워졌다.

이 작품에서도 자연스러워진 부분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조각가의 작업실이 그려져 있는데, 쪼그려져 있는 사람을 보면 정면에서 그린 것처럼 보여진다. 그 중에서도 발을 보면 발가락이 앞에 보이고, 발의 길이가 정면에서 보면 짧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렸다는 특징이 있다. 이집트는 절대 이렇게 그리지 않았지만, 그리스는 이렇게 그림을 그렸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5세기부터 달라졌다.
4) 단축법
정면성의 법칙과 같이 고대의 규칙들이 깨지고, 또 미술가들이 자신들이 본 것에 의지하기 시작하자, 진정한 사태가 전개 되었다. 화가들은 무엇보다도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축법은 어떤 길이가 긴 물건을 정면에서 보면 짧게 보이는 것을 살려서 그린 방법을 의미한다. 인체를 그림 표면과 경사지게 도는 직교하도록 배치하여 투시도법적으로 감축되어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쉽게 말해 내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서 그리는 것에 대해 그리스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과 달리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 주의에 가깝다.
5) 조각상으로 보는 세기 별 차이
(1) 기원전 7세기

이 조각상은 자연스럽지 않은 특징이 있다. 기원전 7세기까지만 해도 그리스 미술은 이집트 미술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기원전 6세기

그러나, 기원전 6세기에 들어오면서 변화가 생겼다. 바로 표정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어색하지만 웃고 있는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들이 표정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여전히 어색하지만, 기원전 7세기와 비교해서 보면 6세기는 무언가 사람이 살아나는 것처럼 보여진다. 즉,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의지가 느껴진다.
(3) 기원전 5세기

그리고 대망의 위대한 각성이 기원전 5세기에서 일어난다. 가장 크게는 '자세'가 변했다. 작품을 보면 피사체는 짝다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조형적으로 큰 특징이 있다. 바로, 좌우 대칭이 깨진다는 점이다. 이를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콘트라포스트(Contraspposto)'라고 한다. 이는 좌우 대칭이 깨지면서 좌와 우의 대비(강약)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생긴 것도 바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현실을 닮게 그리고 싶은 의도가 있다.

좌우 대칭이 깨진 콘트라포스트 특징 말고도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바로 좌우 작품의 차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좌측은 바탕이 검지만, 우측은 형태가 검다는 특징이 있다. 즉, red하고 black의 대비가 있었다. 검은색이 형태일 경우에는 그리기 더 힘들다는 특징이 있었다. 즉 흑색상과 적색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기법을 발전시켰을까? 바로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그리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한 것이 큰 특징이자 차이이다.

자 이번에는 타임라인으로 앞의 세기 별 차이를 정리해보자. 'Geometric Period'의 선은 7세기를 가리키며, 이집트와 큰 차이가 없다. 'Archaic Period'의 선은 6세기를 가리키며, 이집트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과도기인 상태이다. 'Classical Period'의 선은 기원전 5세기 이후를 가리키며 '고전기 시대'로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가 현대 미술의 표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클래식하다, 고전적이다 라는 말은 이 시기를 모방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 Summary
1. 단축법
2. 콘트라포스토
오늘 배운 내용의 핵심은 위와 같이 2가지가 있다. 이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하는 의지라고 보면 되며, 현실을 내가 본 것과 비슷하게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만 그리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현실을 모방하되, 조금 더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 즉 이상화시키려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