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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이해] 2편 : 이집트 미술

| 서론

미술에 대한 정의는 시대마다 다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미술은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가리킨다. 미술관은 18세기가 되어야 탄생했기에, 이전의 미술은 지금 정의하는 미술과는 다르다. 즉, 미술은 시대마다 다르고, 앞으로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 생성형 ai가 미술 작품을 그려주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과연 이것은 미술로 볼 수 있을까? 미술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 있다. 현재는 영화도 예술로 보지만, 영화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영화를 예술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예술의 장르로 등극이 된 것처럼, ai가 만든 것도 하나의 장르로 등극이 될 것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미술은 결국 하나로 정의할 수 없으며, 시대마다 정의가 바뀐다는 점이다.


1) 피카소가 그린 닭


(1) 좌측 그림 = 자연 주의
(2) 우측 그림 = 초기 생명 주의


2) 마태


17세기에 카라바조라는 화가가 교회의 의뢰를 받아서 마태를 그리게 되었다. 그런데, 마태는 한 명이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이 그려졌다. 당시 교회는 좌측 보단 우측의 사진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유명해지는 데에는 좌측의 사진이 영향을 주었다.

카라바조는 의도적으로 초기 생명 주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어떤 스타일로 그릴지에 대해서 화가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는 그 지역이나 시대만의 스타일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이집트, 그리스는 그리스, 한국은 한국만의 스타일처럼 말이다.


| 1장. 신비에 쌓인 기원 - 선사 및 원시 부족들 : 고대 아메리카


선사시대에는 문자도 없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기에 신비에 쌓인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선사 시대는 역사 이전의 시대이며, 이 둘의 표현에는 시기를 구분하는 의미만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원시적인'이라는 표현은 가치판단에서 비롯되어서, 선사시대를 원시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초기 인류학자들은 원시 사회의 사람들이 정신적,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의미로 '원시인' 혹은 '미개인'으로 번역될 수 있는 'Primitive'란 말을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가치 부여를 피하기 위해 현대 인류학자들은 되도록이면 그 사용을 피하게 된다.

즉, 선사시대와 원사시대의 의미는 차이가 있다. 원시적인 말의 의미가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무엇이 우월하다는 것일까? 바로 역사시대, 즉 문명적인 것을 가리킨다. 역사시대가 문자가 발전이 더 되었다고 보기 보다는, 그림이 더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현대 학자들은 primitive라는 말은 지양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현대 인류학자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요즘은 문자 미디어와 이미지/영상 미디어를 중에서 이미지/영상 미디어를 더 많이 접하고, 더 많이 발전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매체 측면에서 보면 선사시대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미디어가 특정 시대에 더 사용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선사시대를 무조건 미개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 2장. 영원을 위한 미술 -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인간은 언제나 죽을 수밖에 없기에, 인간의 영원성을 보여주게 하는 것이 바로 이미지이다. 고대 문명 중에서 이집트가 죽음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열심을 기울였음을 볼 수 있다.

이집트를 생각하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이는 이집트 미술의 큰 결정체이며, 피라미드에는 세계관이 집어져 들어갔으며, 피라미드 안에 그림이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라가 대표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원형 그래도 최대한 지속키시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다. 즉 이미지는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1) 죽음과 미술

'이마고' : 고대 로마시대 장례식 때 착용했던 데드 마스크


미술에서 '이미지'라는 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죽음'이 존재한다. 이러한 어원적 의미로 인해서 이미지는 죽음, 예술사, 장례의식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묘소들이 박물관 없는 문명의 박물관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박물관은 더 이상 분묘를 세울 줄 모르게 된 문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무덤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레지스 드브레, <이미지의 삶과 죽음>, 시각과 언어, p.21


피라미드라는 무덤 안에는 벽화, 장신구 등 다양한 것들을 넣었고, 그중에서도 무덤 안에 미술 작품을 넣었다는 것은 인류 역사 속에서 박물관이라는 것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어서, 현대 시대의 박물관은 분묘를 세울 줄 모르게 된 문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무덤들에서 비롯된 것을 의미한다. 무덤과 박물관이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는 그림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그림은 죽음과 사후 세계를 이어주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미디어로써, 우리의 기억을 지속시켜주거나, 때로는 변형시키기도 한다.

2) 정면성의 법칙


당시 이집트와 그리스의 지도를 보면 중요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집트의 삼면이 모두 사막이라는 점이다. 이는 외부와의 교류가 어렵고, 폐쇄적임을 의미하며, 그렇다보니, 변화가 쉽지 않았었다. 3000년이라는 시간을 물리적인 시간만 보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변화가 많이 없었다. 반면, 그리스의 경우에는 변화가 많았다.

이 그림에서는 상용문자가 담겨져 있다. 즉, 단순 그림에서 그림이 기호화되는 과정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 얼굴의 모습을 보면 한 가지 어색한 점이 있다. 바로 두상은 측면으로 그렸지만, 눈은 정면에서 본 모습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미술 작품을 볼 때, '자연 주의'로 보려면 어색한 점이 없어야 하지만, 해당 작품은 어색한 점이 있기에, 초기 생명 주의 단계의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왜 이 작품에서는 측면 두상에 정면 눈을 붙였을까?


당시 이집트의 그림은 대부분 전신상으로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 머리 = 측면

  • 눈 = 정면

  • 상체 = 정면

  • 하체 = 측면

왜 이러한 법칙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머리의 경우 정면 보다는 측면이 얼굴의 두상을 더 잘 묘사하기에 측면으로 그렸고, 상체는 측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팔이 하나만 보이시게 정면으로 그렸고, 하체는 발의 입체적인 묘사를 표현하려고 측면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림이 '법칙화'되어 그려졌다는 점이다. 이를 미술사 용어로 '정면성의 법칙'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법칙을 보면 정면과 측면이 섞여 있는데, 왜 정면성으로 칭하게 되었을까? 이는 회화와 같은 조각이 아닌, 평면을 그릴 때를 가정한다. 우리가 평면 작품을 볼 때, 대부분 정면에서 보게 된다. 3차원이 아닌, 면이다보니, 보는 사람이 정면 시점에서 볼 때, 인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특징을 잘 드러나게 그리는 것이 중요했다. 즉, 이집트 사람들은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부위별로 다른 시점으로 바뀌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칙에서도 예외가 존재한다. 우측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크기로 그려져 있는 사람은 법칙을 잘 지켜서 그렸지만, 작은 사람은 지켜지지 않았다. 즉, 신분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반영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해당 법칙에는 또 다른 기준들도 존재한다. 바로, 색상이다. 남성은 조금 짙고 어둡지만, 여성은 조금 밝다. 물론 현실에서 남녀의 색을 두 개로 통일할 수는 없지만, 그림을 그릴 때의 법칙을 만들어서 일관성있게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림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것을 극명하게 나타나도록 보장해주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 즉, 본인들이 알고 있는대로 특징을 살려서 그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다시점이다. 특정한 시점에서 보여진 것만을 그린 것이 아닌, 시점을 여러 개 사용했다. 즉, 정면성의 법칙은 다시점까지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면에 그려진 것이 아닌, 삼차원으로 만들어진 회화를 살펴보자.


이 작품을 보면 포즈가 가장 먼저 보인다. 경직되어 있고 변화가 크게 없는 모습처럼 보인다. 심지어 여성이 남성을 안고 있어야 하는 점이나, 한 발이 앞에 있는 것처럼 어색하지만, 통일된 일관성을 따른 부분들이 발견된다.


좌상을 보면, 여기에도 일관성이 있는 기준이 있다. 바로 무릎에 보면 테블릿 pc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필기구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이는 좌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자를 식별할 수 있는 식자계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표현할 때 크기를 정해놓고, 정해진 규칙에 맞춰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3) 정면성의 법칙의 예외

하지만, 예외도 존재했다. 이 작품은 앞에서 언급된 작품과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바로 현실에 가깝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앞의 작품은 일관성 있는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면, 이 작품은 직접 관찰하고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이 작품을 보면, 앞의 작품처럼 정면성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세 번째에 있는 사람은 버젓이 두상이 측면이 아닌 정면으로 되어 있고, 이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상체가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되어 있다. 즉, 정면성의 법칙을 지키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어쩌면, 노예들은 정면성의 법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즉, 이 법칙은 특저 계층에 대해서 철저하게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집트 미술은 묘사 4단계에서 '도식 단계'에 가깝다. 로봇 같아 보이고, 생명이 느껴지지 않기에 말이다.

이처럼, 예외가 그려진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이 사진을 보면, 상대적으로 정면성의 법칙을 철저하게 지키던 규칙에서 느슨해진 것을 볼 수 있다. 팔을 팔걸이에 걸치고 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작은 변화 같아 보이지만, 이는 당시에 이집트 미술에서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이 만들어졌을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대였고, 그림도 철저한 정면성의 법칙에서부터 변화가 생겨났다.


| 이집트 미술의 핵심


실제로 조각가를 가리키는 이집트 말 중의 하나는 '계속 살아있도록 하는 자'였다. 또한, 아무도 볼 수 없는 무덤 속에 이러한 작품을 넣어서, 거기서 이 마술의 힘으로 왕의 연호이 그 형상 안에, 그리고 그 형상을 통해서 영원히 살아가게 도와주도록 했다.

즉, 이집트 미술에서는 영원성을 고려하도록 인간의 구조를 잘 드러냈다는 것이 특징이다.